한국청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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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나리 청년의 불온한 상상

<날나리 청년의 불온한 상상> 1. 날 똘아이로 만들어준 IMF

한국청년연대 2020. 3. 9. 13:33

 - 내 삶은 날나릴지 몰라도 난 행복을 상상한다.-


1. 날 똘아이로 만들어준 IMF.

 1997년, 국제기구란 UN밖에 모르던 나에게 세상은 니 편이 아니야라는 것을 알려준 고마운 녀석이 IMF다. 그녀석은 잘나가던 아버지의 양식장을 먹어 치웠고, 어머니의 결혼반지를 똥값에 가져갔다. 그때는 몰랐지만, 사람을 쉽게 짜르는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만들어 졌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명예퇴직을 해야 했었다. 

 난리도 아니었다. 티비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 사회는 희망이 없으니 이민을 가시오’라는 말이 흘러나왔고, 세계 여러 선진국들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넘쳐났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래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였는데, 처음으로 고민이라는게 생겼다.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분위기는 그러하지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티비를 봤다. 어느 나라가 먹고 살기 좋을지 치열하게 모니터링 했다. ‘정부가 대학생들에게 생활비를 안준다고 대학생들이 학교를 안가?’, ‘대학 입학 시험 없이, 내가 공부하고 싶은 대학을 가?’,‘집 없는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집을 줘?’ 거짓말 같은 진짜가 내 귓구멍을 파고 들었다. 거짓말 같은 나라가 있다니. 

‘프랑스와 캐나다’ 였다. 

 이민을 결심했다. 고3 가을이었다. 이민 갈 나라도 정했다. 
 ‘프랑스 또는 캐나다’, 그 나라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했다. 완벽했다. 대학 입학시험도 안보고, 집도 주고, 일자리가 없어도 수당을 줬다. 유색인종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그 무엇보다도 자유,평등,박애라는 말에 필이 꽂혔다. 세금을 많이 걷어가는 것 빼고는 새로운 사회라 생각했었다. 

 새로운 사회에 눈을 뜨니, 우리나라는.. 빨리 떠나고 싶었다. 모든 꿈을 버리고,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이민을 가기 위한 10년의 프로젝트였다. 무역쪽으로 대학 전공을 하고, 언어 장벽을 넘기 위해, 프랑스어를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 졸업하고 외국계 무역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해외에 파견되는 것, 그리고 그 곳에서 자리 잡는 것을 계획했다. ㅋㅋ지금봐도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실천에 옮겼다. 국제통상 전공에 프랑스어 부전공.... 그렇게 난 이민을 갈 줄 알았다.  
 
 대학까지는 어느 정도 계획대로 진행되었지만, 저놈의 IMF가 만들어 논 비정규직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무역회사는 개뿔, 인문대생을 위한 직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평생 비정규직에 노예처럼 살아야 할 판이었다. 좌절이었다. IMF가 나의 많은 걸 집어 삼켜버렸다.

 좌절하고 넋 놓기엔  난 이미 많은 걸 알아버렸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상상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민은 못가지만,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어 버리자 하는 오기가 생겼다. 나중에 보니 그 오기는 나를 ‘운동권’이라는 세상에 발을 들이게 했다. 

 선진국처럼 좋은 사회 제도를 만들자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욕을 먹었다. 지금은 북한에 가서 살라는 말을 듣는다. 똘아이라는 말을 듣는 건 괜찮은데, 북한에 가라? 북한이 그렇게 선진국인가? 궁금하군. 

 궁금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살면 안 되나? 그게 빨갱이 사상이어서 상상조차 하면 안 되나?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자기들이 만들어준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라고 하는 말이, 이제는 듣기 싫다. 내 맘대로 상상하고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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